1. 재사(才士), 특히 빼어난 문사(文士)에 대한 조조의 비정과 냉혹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자신은 거거에 관해 말한 적이 없으나 그 같은 이상심리(異常心理)의
바탕을 헤아려 볼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글(文學)의 독기(毒氣)이다.
조조는 여러 방면에 걸쳐 재능을 보였으나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글에 있어서의 성취이다.
당시는 어지러운 정치상황과는 달리 중국 문학으로서는 한 특이한 융성
을 보인 때로 소위 건안칠자(建安七子) 또는 업하칠자(鄴下七子)로 불리
는 뛰어난 문사들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건안(建安) 문단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손꼽아야 할 것은 조
시(曺詩)라 할 만큼 조조와 그의 피를 이어받은 두 아들 조비(曺丕) . 조식
(曺植) 3부자의 글은 뛰어난 데가 있었다.
3. 어떤 평자(評者)는 조조가 일생을 통해 달성한 정치적 위업보다 그의
시(詩)를 더 높이 치기도 할 정도였다.
조조는 평생을 싸움터를 누볐으나 한번 창을 기대 놓고 붓을 잡으면 호
연한 기백과 높은 품격의 시들을 쏟아냈던 것이다.
4. 그러니만큼 글에 대한 조조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을 것이고 또 대개
는 무장(武將)들과 병략가(兵略家)들에게 둘려싸여 있던 그라 그 자부심
은 실제 이상으로 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나타나 그의 문한적 자부심을 건드리는 부류가 바로 재
사, 특히 문사들이었다.
세상에서 사람을 상처입게 만드는 일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서도 가
장 음험하고 치열한 원한을 품게 하는 것은 문학적인 인간의 글에 대한
자부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만약 작가나 시인에게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권한이
있다면 평론가, 특히 엄격한 평론가나 자신의 문학적 자부심에 상처를 입
힐 만한 천재는 종종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할 것이다.
5. 그 다음 조조가 예형을 죽에 한 또 하나의 감정적 배경이 될 수 있는 것
은 정치의 독기이다.
조조의 일생은 그래로 정치적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정치적 투쟁은 철두철미 힘의 원리에 지배되고 승리는 통상으
로 상대를 제거하는 형태로 확인되는 것이었다.
그런 원리와 형식에 익숙해 온 조조가 은연중에 글의 무력함에 대한 경멸
과 문학적 도전에 대한 정치적 대응의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즉 조금이라도 자기의 문학적 자부심을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정적(政敵)처럼 제거해 버렸는데 그 같은 예는 예형뿐만 아니라 뒷날에도
몇 번이고 거듭 볼 수 있다.
역시 건안칠자의 하나였던 공융을 죽인 일이나 천하의 재사 양수(楊修)를
죽인 일도 같은 예가 될 것이다.
6. 여기에 비해 서둘러 허망한 죽음으로 줄달음쳐 간 예형의 내면도 음미
해 볼 만하다.
좋게 해석하면 그의 죽음은 지성인의 결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그때까지 학문과 이상의 고고한 세계에 있다가 갑작스레 정치 무대로 끌
려나온 그에게는 조조를 비롯한 당시의 관료사회가 보인 적의와 냉대가
견딜 수 없이 치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고 그들에 의해 주도되는 세상도
절망적으로 비쳤을 것이다.
7.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거의 정신적인 파탄이라고 할 만큼 외곬으
로 죽음을 향해 달려간 그의 행위는 나약한 지성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의 눈에는 조조와 그의 집단이 지닌 정의 없는 힘이 단순한 두려움이나
불안 이상의 전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거기에 대처할 길 없는 지성의 나약함에 대한 절실한 깨달
음은 삶 전체에 대한 절망으로 번졌다고 이해해서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요컨대 힘으로 맞설 자신이 없어지자 그때부터 그는 살아서 불의를 보지
않는 것, 대시 말해 주음의 길만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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